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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언제, 왜 만들어졌나: 1443년 창제부터 해례본 발견까지

세종이 1443년에 만들고 1446년에 반포한 훈민정음. 왜 만들었는지, 처음 28자가 지금 24자가 된 이유, 1940년에야 발견된 해례본이 왜 중요한지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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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의 펼친 면. 자음 글자와 한자 설명이 세로로 적혀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 퍼블릭 도메인 (위키미디어 공용)

한글날(10월 9일)이 되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말은 누구나 하지만, 만든 해와 세상에 알린 해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한글을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 적힌 책이 500년 가까이 사라졌다가 1940년에야 나타났다는 것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공기관 자료를 바탕으로 순서대로 정리했습니다.

1443년 창제, 1446년 반포

시기 일
1443년 (세종 25년) 음력 12월 세종이 새 문자 28자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실록에 남음
1444년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새 문자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림
1446년 (세종 28년) 음력 9월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림(반포)

만든 뒤 바로 알리지 않고 약 3년을 둔 데에는, 새 글자를 실제로 써 보며 다듬고 해설서를 만드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봅니다. 반포 때 함께 펴낸 해설서가 뒤에 나오는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왜 만들었나: 세종이 직접 밝힌 이유

훈민정음 첫머리에는 세종이 직접 쓴 서문이 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잘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백성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할 뿐이다.

이름인 ‘훈민정음(訓民正音)’도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입니다. 글을 모르는 백성이 억울한 일을 글로 호소하지 못하는 현실을 바꾸려 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반대도 있었다

새 문자가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닙니다. 1444년 최만리 등은 상소에서, 중국과 다른 문자를 쓰는 것은 사대(事大)에 어긋나고, 쉬운 글자가 생기면 학문(한문)을 소홀히 하게 된다는 이유 등을 들어 반대했습니다. 세종은 이 상소를 받고 신하들과 직접 논쟁을 벌였고, 계획을 그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28자는 왜 지금 24자가 됐나

처음 만든 글자는 자음 17자, 모음 11자, 모두 28자였습니다. 이 가운데 다음 4자가 시간이 흐르며 쓰이지 않게 됐습니다.

  • ㆍ(아래아): 모음
  • ㅿ(반치음), ㆁ(옛이응), ㆆ(여린히읗): 자음

소리 자체가 우리말에서 사라지거나 다른 소리와 합쳐지면서 글자도 함께 없어졌고, 그래서 오늘날 기본 글자는 24자(자음 14, 모음 10)입니다. 아래아(ㆍ)는 제주 방언 연구나 ‘아래아한글’이라는 프로그램 이름 정도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1940년, 안동에서 나타난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의 서문과 함께,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글자를 만든 원리를 자세히 풀어 쓴 책입니다. 예를 들어 자음 ㄱ·ㄴ·ㅁ·ㅅ·ㅇ은 소리를 낼 때의 발음 기관 모양을 본떴고, 모음은 하늘(ㆍ)·땅(ㅡ)·사람(ㅣ)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이 이 책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오랫동안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는 한글의 기원을 두고 여러 추측이 떠돌았습니다. 그러다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원본이 발견되면서 한글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가 분명해졌습니다. 이 해례본은 간송 전형필이 사들여 지켰고, 지금은 국보이자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입니다.

한글날이 10월 9일인 이유

해례본에는 책을 펴낸 때가 ‘정통 11년 9월 상순’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를 양력으로 바꾸고 상순의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삼아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했습니다.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다른 날짜를 기념일로 쓰기도 했으니, 한글날 날짜 자체도 해례본 발견의 결과인 셈입니다.

정리

  • 만든 해는 1443년, 세상에 알린 해는 1446년
  • 목적은 글을 모르는 백성이 쉽게 쓰도록 하는 것
  • 처음 28자, 4자가 사라져 지금 24자
  • 만든 원리가 적힌 해례본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참고한 공식 자료